2020년 개봉 후 조용한 입소문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일본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가 2025년 국내 재개봉 소식을 전하며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홋카이도 하코다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세 청춘의 잔잔한 일상과 감정의 흐름은 감성적인 일본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한껏 느끼게 해준다. 본 글에서는 재개봉을 앞둔 이 작품의 매력, 공간 연출, 감정선, 그리고 왜 지금 다시 봐야 할 영화인지에 대한 깊은 리뷰를 전한다.
청춘의 공허함을 그린 영화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줄거리만 보면 지극히 단순하다. 특별한 사건이나 극적인 갈등 없이 세 명의 젊은이 이름조차 명확하지 않은 ‘나’, 책방 동료 시라카와, 그리고 새로운 존재 사치코가 함께 여름을 보내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단조로운 흐름 속에 담긴 청춘의 정서와 감정의 결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영화는 말보다는 분위기, 행동보다는 여백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을 전달한다.
‘나’는 삶에 대한 뚜렷한 목표도, 열정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와 함께하는 시라카와는 더더욱 무심하고, 사치코는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은 자유로운 인물이다. 세 사람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함께 잠들고,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 담긴 미묘한 정서와 침묵은 청춘의 본질을 정확히 담고 있다.
감정이 격하게 폭발하거나,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는 서사는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을 통해 삶을 보여준다. 현대의 청춘들이 흔히 겪는 불확실성과 무기력, 그리고 애매한 관계 속에서 오는 감정의 복잡함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청춘은 늘 빛나지 않고, 때론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날들 속에 스며 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그 무색무취한 청춘을, 말없이 그러나 뚜렷하게 그려낸다.
영화 속 홋카이도, 공간이 주는 감성
이 영화의 무대가 되는 홋카이도 하코다테는 마치 또 하나의 주인공처럼 기능한다. 북쪽 바다의 도시인 이곳은 대도시 도쿄나 오사카와는 전혀 다른 정적이며, 광활한 하늘과 한적한 골목, 조용한 바람, 오래된 건물들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결정짓는다.
인물들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이 도시의 리듬에 따라 살아간다. 출근 전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며 걷는 거리, 늦은 밤 돌아오는 자전거 위의 풍경, 편의점 불빛에 기댄 대화는 영화의 톤을 결정짓는 동시에 관객의 감정을 부드럽게 흔든다. 이 도시는 캐릭터들의 내면을 반영하고, 그들의 불안정한 정체성과 불분명한 미래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준다.
집 내부 또한 인상적이다. 세 인물이 함께 머무는 공간은 구조상 다소 불편하고 협소하다. 하지만 그 제약은 오히려 관계의 긴장감과 감정의 응축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식탁 하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대화와 침묵, 불 꺼진 방안에서의 혼잣말,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희미한 새벽빛이 모든 공간적 연출은 영화의 미학을 완성한다.
감정선과 음악, 그리고 잔상
이 영화의 감정선은 ‘명확하지 않음’에서 오는 진실성이 있다. 인물들은 서로를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말을 하지 않는다. 관계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고백도 갈등도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적이다. 실제로 우리는 많은 관계 속에서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감정을 품고 살아간다. ‘친구’, ‘연인’, ‘동료’라는 구분이 아닌, 그저 ‘같이 있는 사람’으로 머무는 감정 말이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이러한 관계의 모호함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특히 사치는 자유롭지만 슬픈 캐릭터다. 그녀는 떠날 것을 예고하듯 등장하고, 결국 영화 속에서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이별의 여운을 남긴다. 그녀의 존재는 두 남자의 일상에 미묘한 균열을 일으키며, 관객에게도 정체불명의 감정을 남긴다.
음악은 이 잔상을 더 깊게 각인시킨다.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랴 키랴 포셋의 곡들은 이 영화의 여백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조용한 기타 선율, 반복되는 멜로디, 낮게 깔리는 음성은 말보다 더 많은 감정을 전달하며, 관객의 감정을 흔든다. 특히 사치가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적인 명장면이다. 말 없는 장면 속에서 흐르는 음악은 캐릭터의 고독과 자유, 애정을 모두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간직한다.
결론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거창하지 않지만, 섬세하고 깊다. 격한 감정보다 조용한 정서로, 복잡한 이야기보다 단순한 일상으로 우리를 감싸는 이 영화는 청춘의 본질을 가장 진실되게 그려낸 작품이다. 2025년 재개봉을 통해 더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의 여백과 감정, 그리고 아름다움을 새롭게 마주하길 바라며, 잊고 지낸 감정 하나를 다시 떠올릴 준비가 되었다면, 극장으로 가서 함께 감상하는 걸 추천합니다.